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유물

타타의 네안데르탈인 유물과 크로마뇽인의 동물 조각을 현미경을 통해 이것들이 어떻게 조각되고 사용되었는가를 조사해 본 결과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물은 세심하게 조각되고 비스듬히 깎여 있었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새기고 깎인 자국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표면은 반복 사용으로 닳아서 윤이 났다. 이로써 이 유물은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일 이것이 도구였다면 마찰하거나 사용한 부분이 제일 많이 닳아있어야 했다. 실제로 이것은 의도적으로 조각되고 그려진 상징물로써, 비실용적인 의식에 사용하였으며 장기간 보존되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떠한 목적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거의 100년이 넘게 고고학자들은 크로마뇽인이 상징적 조형물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믿어 왔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석간주를 사용하였으며 상징물로는 동물의 뼈나 사슴뿔, 두개골 등을 사용하였고, 장례 시에 죽은 자와 함께 부장품을 매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두개골의 용적도 현대인과 대등하거나 때로는 더 많기도 하며, 또한 정교한 석기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을 완전한 인간에는 못 미치는 존재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그들이 어떠한 형태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이는 상징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나 근대적 언어의 발전이 오로지 완전한 현 인류에게만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크로마뇽인이 만든 최초의 동물 조각을 현미경을 보았을 때 이것도 타타의 유물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독일의 Vogel herd에서 나온 매머드의 상아로 만든 2.5인치의 아름다운 말 조각은 기원전 약 3만 년 무렵의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동물 조각이다. 귀, 코, 입, 갈기 등이 세밀하게 새겨진 이 조각도 지속해서 만져 많이 닳아 있었다. 사용 중 어느 때에 말의 옆구리에 새로운 각도의 절단면이 생겼으며, 또한 화살이 새겨졌다. 이는 분명 특수한 살생 의식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이 유물들이 의도적으로 제조된 상징적 조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다. 이 두 유물을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예술과 상징 형성이 가능했던 이유에 관한 지속적인 논쟁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그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다. Abbe Henri Breuil 이 제시한 이론도 그중 하나이다. 그는 20세기 초에 빙하기 인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시작해서 '선사 시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으로, 인류의 예술은 낙서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지방의 석회암 동굴의 벽에 마치 국수 가닥이 얽혀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손 낙서 그림들이 있다. 때로는 그 모양이 마치 동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브레일은 이러한 마구잡이 낙서 속에서 우연히 동물의 형상을 인식하게 되면서 예술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아로 정교하게 만든 포겔헤르트의 말은 가장 오래되었다는 동굴 낙서보다 최소 5000년 이상 앞선다. 타타의 네안데르탈인들 상징 유물도 동물의 형상은 아니지만, 낙서에서 유래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 밖에도 프랑스나 스페인의 석회암 동굴들은 유럽에서도 그 지역에 한정된 지리적 현상이다. 빙하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면 어디든 상징이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스페인 뿐 아니라 동굴이 없어서 동굴 벽화나 동굴 예술은 없을 수밖에 없던 시베리아에도 역시 상징이나 이미지는 존재했다.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도 브레일과 흡사한 주장을 제시한다. 침팬지는 종이 위에 선이나 형상을 아무렇게 갈겨쓸 수 있다. 예를 들어, Mojo라는 이름의 침팬지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훈련한 연구자들까지도 새라고 인식하는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명명하고 사용하는 침팬지의 능력에 대한 이러한 자료는 침팬지들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조장되었으며, 이미지를 인식하고 명명하는 방법을 교육받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지에 이름을 붙이고 명명된 이미지를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문화와 행위의 진화된 측면이지 정상적인 침팬지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침팬지는 이처럼 인간과 거의 흡사한 행위를 할 능력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침팬지가 야생의 상태에서 살아가거나 적응하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진화 과정에서 소멸하고 말았다. 인간이 훈련하고 실험하면 많은 동물이 그들의 정상 환경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따라서 잠재적인 것으로만 남아 있는 능력을 보여 준다. 침팬지는 시각적인 추상 능력이나 상징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침팬지의 예술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침팬지는 본질적으로 인간들이 이름 붙이는 방식에 기초하여 학습을 통해 인간이 사용하는 유형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사물의 이름 붙이기는 분류와 차별화의 방식이며, 따라서 묘사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는 차별화가 필요하고 배양되는 인간의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어린아이는 옹알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옹알이가 언로로 발전하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 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화적 조건 없이 낙서가 예술로 발전할 수는 없다. 타타의 유물과 포겔헤르트의 말은 상징적 조형물로, 그것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문화적 전통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도 인간으로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물에 무엇을 새기거나 미적으로 표현하려는 개인적으로 특수한 노력의 산물, 즉 낙서의 사례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이름과 문화적인 용도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