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마뇽인의 상징 문화

분명 크로마뇽인들은 네안데르탈인들보다 더욱 복잡한 상징 문화와 사회 조직을 이룩하였다. 크로마뇽인들은 각기 고유한 의미를 지니는 보다 광범위한 상징과 이미지로 사회적, 문화적 과정을 표시하거나 지칭했다. 이 이미지와 상징들은 분명 우리가 오늘날 상징과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이나 행사를 지칭하거나 나이나 성별, 지휘를 차별화하며, 중요한 과정들을 의미하거나 신화나 설화의 부분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이러한 형태의 이미지 사용이 이루어짐으로써 빙하기 예술이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겠다. 유럽의 빙하기 문화 말기의 것으로 이탈리아 Paglicci 유적지에서는 말의 골반에 새긴 말 형상이 발견되었다. 이 형상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이 말은 27번이나 상징적으로 도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말의 몸체나 그 주변에 깃털 달린 화살이나 창이 새겨지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것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각기 다른 지점에 다른 방식으로 새겨졌다. 분명 그 말은 절대 죽지 않았을 것이다. 포겔하르트의 말처럼 이 말도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된 상징임이 분명하다. 애초에 고고학자들은 이처럼 살해된 동물들을 사냥해서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의 산물로 해석했다. 단순한 사냥 주술에 동물의 이미지는 그것이 죽음으로써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이미지가 계속 사용되었다. 이는 단순히 한 마리의 말이나 하나의 노획물, 하나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모든 말, 그리고 아마도 말 신화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이다. 다양한 의식을 행할 목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여러 수렵 문화와 마찬가지로 파글리치 말도 사냥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 마리의 중요한 영적 동물은 치유나 탄생, 행사의 시작, 때로는 죽음을 위해서 그 이미지를 죽이는 행위에 의해서라도 상징적으로 희생되는 것이다. 빙하기의 동물 그림들을 분석해 보면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Pech-Merle 동굴에 있는 두 개의 말 그림은 빙하기가 끝나기 약 5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분석해 보면 그 시기 동물 그림들이 주기적으로 여러 번 사용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그림에는 말을 죽이는 화살은 보이지 않는다. 먼저 바위에 검은 칠을 하고 그 위에 말 형상의 윤곽을 그렸다. 적외선 분석에 의하면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 텅 빈 윤곽에 여러 가지 색소나 석간주로 붉고 검은 점들이 채워졌다고 한다. 그 말은 사용은 되었지만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 말이 채워지고 점과 손자국들이 그 주변에 등장했을 때도 그 말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 그림과 벽은 계속 사용되었다. 그 벽의 말 부분이 채워지자, 두 번째 말이 그려지고 그것을 채우는 똑같은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 외에도 첫 번째 말의 몸체에 커다란 붉은 물고기가 그려졌으며, 가슴 부위에는 다른 원료로 커다란 원이 그려졌다. 이 이미지들 가운데 어떤 것도 말을 죽이는 것과 관계된 것이 없었다. 이것들은 계절이나 태양과 관련된 특정 상황 속에서 말과 상징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 이러한 상징들이나 그 용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단순히 사냥의 주술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처럼 도살의 흔적이 없이 말 그림을 사용한 예는 빙하기 예술 전체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사용의 측면이 왜 고고학적 관심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는가는 하나의 예만 들어도 분명히 드러난다. 스위스 케슬러로치 Kesslerloch 의 빙하기 유적에서 나온 순록의 뿔 조각에는 말머리가 새겨져 있다. 이 조각은 도구도 아니고, 옷의 부착물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장식물로 볼 수는 없다. 이 그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그 전면에 재갈 모양을 새로 새김으로써 두 번 조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재갈은 다른 도구로 희미하게 새겨졌다. 이 그림도 어떤 용도로든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을 죽이지는 않았다. 현미경으로 보지 않으면 이 그림은 단순한 말머리일 뿐임으로 그 사용처에 대해서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빙하기에는 동물 그림이라고 식별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징들도 존재했다. 포겔하르트의 말과 동일한 전기 빙하기의 유물로 타타 유물을 연상케 하는 작은 뼈가 출토되었다. 이는 프랑스 블랑샤 Blanchard의 크로마뇽인 바위 동굴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타타의 유물과 거의 같은 크기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이 유물은 타타의 유물과 달리 실생활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면의 한쪽 끝은 지속적인 힘을 받아 부러져 있으며, 사용할 때 손바닥에 닿았을 뒷면은 닳아서 윤이 난다. 이는 석기의 한쪽 면이나 그 끝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 힘을 가하는 도구로 오랫동안 사용된 것 같다. 이 도구는 주머니나 허리춤에 넣고 다니면서 이러한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이 유물을 사용되는 동안 29가지의 흔적을 남겨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 29가지 흔적은 모두 다른 시기에 다른 위치에, 다른 방식으로 새겨졌다. 이 흔적들을 모아 보면 어렴풋이 뱀 모양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자나 산수가 발전하기 2만 5000년 전에 누군가가 어떤 과정이나 사건의 연속을 기록하였거나, 그가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구조화한 것 같다. 몇 가지 수리 검토를 해 본 결과, 그 굴곡이 달의 변화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보름달은 왼쪽에, 반달은 가운데에, 그리고 초승달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달은 관찰하여 표기한 것으로는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무언가 표시하려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연속적인 셈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많은 원시인이 수를 알지 못했지만 해와 달과 별이 바뀌는 시기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