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의 커뮤니케이션 - 선사시대, 빙하시대

원시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을 논한 A. 마셜(marshack)은 이렇게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선사 시대는 말이 없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그 선사 시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기에, 그리고 남아 있는 소수의 기록도 우리가 제대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인간들은 항상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이용하여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남에게 이를 전달하였으며, 이를 후세에까지 전했다.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에 동원한 수단, 즉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함으로써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계속 확장, 발전해 온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바로 인간 커뮤니케이션 발전의 핵심을 이룬다. 발달한 테크놀로지가 이용됨으로써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사회 제반 조건이 변화,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욕구와 필요성도 증대되어 왔다. 이 욕구와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매체를 능가하는 테크놀로지가 필요했다. 이러한 역동적 메커니즘 속에서 발달한 테크놀로지가 커뮤니케이션에 도입되어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 테크놀로지와 사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간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구체적인 양산이 다르게 나타났지만, 관계는 대동소이했다. 이러한 상황은 대중 매체가 출현하기 이전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시 고대 사회 이래 인류는 고대 국가의 성립과 생산력의 발전, 이로 인한 교환 경제의 성립, 나아가서 상업 활동의 확대 등의 발전을 거치며 이를 뒷받침하는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도 발전이 이뤄졌다.

단순히 주술적 의미가 아닌 커뮤니케이션

 A. 마셜은 빙하기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유럽 지역에서 발견된 후기 빙하기의 각종 유물을 고고학자인 마셜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마셜은 빙하기의 인간들이 상징을 이용하여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즉, 이 시기의 유물들을 단순히 주술적인 목적이나 예술의 관점에서 해석되면 이전의 주장과 달리 원시인들이 상징을 이용하여 자연환경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려 했음을 분석해 내고 있다.

해럴드 이니스는 고대 제국의 커뮤니케이션을 논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이 사회 변화의 주요 요인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하는 이니스는 자신의 논문에서 고대 문명에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전해 가는 과정과 그것이 여러 사회의 부분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고 있다. 중세의 커뮤니케이션은 James burke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근대적인 대중 매체가 성립되기 이전 사회의 주요 커뮤니케이션 양식과 이에 따른 생활양식 및 인간 의식의 여러 측면을 보여 주고 있다. 전근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는 거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점을 비추어 볼 때 burke의 논문은 중요한 시사를 제공해 줄 것이다.

알렉산더 마셜의 원시 고대 사회 인류의 예술과 상징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이 정착하면서 초기 농경문화를 형성하기까지 수만 년 동안 여기저기에 존재했던 수렵 문화의 언어나 신화, 지식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소리 내 그 말을 할 줄 몰라도 읽어 내고 해독해 낼 수 있는 언어가 점토판이나 돌, 파피루스 등에 기록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고대의 기록물들은 우리에게 당시의 왕이나 성직자, 왕조, 전쟁, 도시, 신, 여신 등의 이름이나 연대를 말해 줄 뿐 아니라 양이나 소, 토지, 곡물, 노동 등을 사고판 흔적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기록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아시아에서 초기의 그림 문자가 나타나던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인간은 제대로 된 문자를 발명하기 25000년 전부터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상징적 기록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고 나서 오래 지나지 않은 후기 빙하기로 기원전 35000년 경이다. 이처럼 선사 시대의 이미자와 상징체계에서 문자와 역사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은 이제 막 과학적으로 탐구되고 논의되기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인간들의 초창기 노력도 논의되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네안데르탈인들은 상징과 이미지를 만들어 냈고 사용했다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 시대에 인간이 남겨 놓은 유물들은 아직 희소할 뿐 아니라, 그나마 남아 있는 유물들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인류는 분명히 존재했으며, 그들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되고 있다. 1964년 헝가리의 고고학자 라슬로 베르테스는 조그만 알 모양으로 된 희귀한 물체를 공개하였다. 이는 약 기원전 45000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털매머드의 이빨을 갈아서 만든 것이었다. 세심하게 조각한 다음 다루기 쉽도록 한쪽 면을 경사지게 했으며, 광택이 나는 표면에 석간주(철의 산화물로 함유한 흙으로 그림물감의 원료)로 그림을 그렸다. 네안데르탈인의 장식품이 발견된 곳은 헝가리의 타타 근방으로, 후기 크로마뇽인 사냥꾼들이 새기고 조각한 동물의 상들이 프랑스의 바위 동굴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지 약 100년 후이다. 이 유물은 매머드나 털 무소처럼 멸종한 동물들을 그린 것이었으므로 19세기 유럽인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웠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1868년 크로마뇽인의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학자들은 빙하기의 수렵인들도 육체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와 대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당시의 동물 그림들은 수렵을 위한 주술로 해석되었다. 즉, 미개한 조상들이 식량 확보를 위한 원시적인 의식으로 사용했다고 이해하였다. 이처럼 단순하게 여겨져서 그동안 체계적인 방식으로 연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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