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의 발전과 광고

초기 수공업적 신문의 발행 단계를 지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던 대변지에서, 산업혁명으로 신문의 상업화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혼자서 신문을 발행하는 시대에서 경영, 발행, 편집 등 세분화하여 신문을 발행하는 기업의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신문은 상업화, 거대화하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 나갔지만, 공공 영역으로 여겼던 신문이 정치적, 경제적 이유에 따라 다른 요인들에 의해 종속적으로 성격이 변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수공업적 신문 발행의 단계

신문 사업은 처음에는 소규모 수공업 형태로 운영되었다. 초창기에는 초기 자본주의의 전통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적절한 이윤 극대화라는 원칙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발행인은 본질적으로 뉴스 전달의 조직화와 뉴스 수집 자체에만 한정되어있었다. 그러나 신문이 점차 단순한 뉴스 전달에서 이데올로기와 견해를 표현하는 사업으로 발전해 감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뷔허 K.Bucher 는 "신문은 단순한 뉴스 발행 기관에서 여론을 전달하고 선도하는 기관이 되었고, 정당 정치의 투쟁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신문 사업의 내부에는 이제 뉴스 수집과 발행의 중간에 편집부라고 하는 새로운 부서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이것은 발행인이 이제 단순한 뉴스 판매인에서 여론을 다루는 입장으로 변화하였음을 시사한다. 

 

정치 신문의 단계

결정적인 정치 신문으로의 전환은 편집 기능의 도입 이전에도 있었다. 개인 문필가들이 교육적인 의도를 가지고 정기 신문을 이용하여 그들의 비판적, 이성적인 논설을 발표하기 시작하며 일명 '학예 신문'이라는 도덕적 주간지와 정치 잡지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이 당시의 신문은 초기적인 상업적인 기능은 최대한 줄이고, 교육적인 동기에서 발행해야 되었다. 당시 신문 기업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사업이었고, 나중에는 이러한 점 때문에 정치적인 동기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아 신문이 발행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신문을 흔히 '돈 많은 귀족의 취미 활동'으로 여겼고, 학자나 문필가의 주도로 만들어진 경우도 많았다. 

비판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치 문제를 토론하는 언론의 존재 자체가 논쟁거리가 되는 한, 신문은 자신을 주제로 하는 논의를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 공공 영역이 영구히 합법화되기 이전에 정치 신문을 창간하고 발행하는 것은 여론 자유의 확대를 위한 투쟁과 원칙으로서의 공공성을 위한 투쟁에 휘말리는 것과 같았다. 이 시기 권위주의 국가에서 통제는 신문을 단순한 사업으로 전락시키고 다른 모든 사업과 마찬가지로 훈령과 금지령에 따르게 했다. 이와 달리 사설 기능을 하는 신문들은 주로 공중의 비판적 기능을 주장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문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은 수익 증식을 위해 투자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차적인 관심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신문의 상업화

 부르주아 법치 국가의 확립과 정치적 공공 영역이 합법화 됨에 따라서 합리적, 비판적 토론 광장으로서의 신문이 비로소 사상적으로 입장을 표현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제 신문은 논쟁적인 자세를 버리고, 사업적 경영을 위한 영리 기회를 중시할 수 있었다. 1830년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사상에 치중한 신문에서 사업에 치중하는 길로 변화하게 되었다. 광고 산업은 손익 계산의 새로운 기초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 부당 가격을 인하하고 발행 부수를 몇 배로 증가시킨다면, 그에 따라 발행인은 보다 많은 지면을 광고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편집 지면을 이용해서, 광고란을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생산하는 기업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라는 뷔허의 말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에는 이미 상당수의 신문 기업이 주식회사로 조직되었다. 

기술적, 조직적인 기구의 확대와 개량은 자본 규모의 확대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사업의 위험 부담을 증가시켜서 필연적으로 기업 정책을 사업 능률 향상으로 맞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814년에 '타임즈 The Times'는 4세기 반 만에 구텐베르크식 목재 인쇄기 대신 최신 고속 인쇄기로 대체하였다. 이로부터 30년 후에 전신기의 발명은 뉴스 네트워크에 혁명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19세기 후반 거대한 일간지들은 신문이 상업화됨에 따라 그 자체도 외부에서의 조작을 받기 쉽게 되었다. 편집 지면의 마케팅이 광고 진면의 마케팅과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한 이래, 신문은 특정한 공공 영역 참가자들이 개인으로서 그들의 역량에 따라 이용하는 기관이 되었다. 즉, 신문이 특권을 가진 사적인 이익이 공공 영역으로 침입하는 입구가 된 것이다. 

공공 영역의 성격 변화

원래 편집 활동은 기술적으로 진보한 뉴스를 전달해야 한다는 압력에 의해 문필적 활동에서 저널리스틱한 활동으로 전문화되었다. 이에 따라 발행인과 편집인의 관계도 변화하였다. 사설보다 소재의 선택이 더 중요해지고, 뉴스의 정리나 평가, 점검, 조정이 효과적인 문예적 표현을 사용한 것보다 더 긴요했다. 특히 1870년대 이래 그 경향이 분명해짐으로써 재능 있는 발행인의 기능을 우선적인 기준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행인은 편집인을 임명할 때, 그들이 회사 방침에 따라 특정한 영리 목적 사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근무해 주기를 기대했다. 편집인의 자율성은 정치적인 목적을 띈 신문에서조차 제약되었다. 1860년대 독일에서는 보수파에서, 다음 해에는 사회 민주당에서 이런 유형의 신문을 발간하였는데, 편집인은 경영인 대신 감독 위원회에 종속되었고, 어느 경우든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고용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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