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언론 사상의 태동과 신화

'초기 언론과 권력관계' 현대 사회의 공중들이 정보에 대해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디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뉴스에 대한 갈증'은 그들에게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며,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사실 자체가 세계의 공중이 공적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추구해 왔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또한, 공중이 공공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원하기 때문에 그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곧 언론의 고유한 역할이라는 주장은, 단지 정보에 대한 공동의 욕구나 관심이 있다는 것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중요한 문제는 무엇에 관한 정보인가라는 점이다. 즉, 공중이 원하는 정보가 공공 쟁점과 관련된 것인지,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익살스러운 사건이나 단순한 가십에 관한 것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언제나 생활을 위협하는 상황에 관한 정보를 알려고 해 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부터 미국 서부나 아프리카 초원 지대, 중부 유럽의 삼림 지역, 그리고 중동 사막 등지에서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원시적인 채널을 통해 임박한 적군의 침입, 몰려드는 짐승 떼, 뇌우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왔다. 그러한 정보는 메시지 수용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뉴스가 되었다. 전통 사회에서는 실제 그러한 '뉴스'가 생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날마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사회적 상황에서는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 영역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상업적인 거래가 이웃 간에만 이루어지던 단계를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뉴스에 관심을 쏟는 수용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해 온 초창기의 첩보가 주로 상업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일 먼저 '뉴스에 대한 갈증'을 느낀 계층은 귀족과 성직자 및 무역상들이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있었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주된 기능은 정치적, 경제적 권력층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중세의 마지막 몇 세기 동안은 중산 계급이 여러 가지 수난을 겪으면서 매우 느린 속도로 성장해 온 시기인데, 점차 이들은 보다 공평한 권력 배분을 위해 공국의 군주 및 귀족들에게 도전했다가 큰 타격을 입었던 상인과 장인, 그리고 정치적 저항 세력들은 종교 개혁 이후에 가열된 혁명의 불길을 더욱 가속하기 위해 인쇄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한 불길은 놀라운 기술적 진보 및 식자층의 증가 현상과 더불어 뜨겁게 타올랐는데, 더욱 많은 사람이 글을 읽게 될수록 그들은 보다 많은 정보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뉴스 페이퍼'라고 하는 보다 새로운 신문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17세기 초엽에 이르러 유럽 전역에서 거의 엇비슷한 시기에 정기 간행물이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대중들이 이러한 간행물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거나 공적인 쟁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비등했으리라는 가정은 잘못이다. 신문 현상의 발달이 낡은 중세 봉건 질서의 붕괴를 촉진한 사상의 폭발과 궤를 같이해 오긴 했지만, 그러한 사상이 수 세기 동안 줄곧 대중의 관심을 끌어왔던 것은 아니다. '초기 신문의 기능' 유럽 지역과 '신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신문이 등장했던 17~18세기에, 그러한 정기 간행물은 주로 네 가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나 그들 간행물은 권력을 쥐고 있던 세력들이 그들의 환경을 감시함으로써 위협을 제거하고 호기를 포착하기 위한 사회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문자 커뮤니케이션에 정통해 있던 성직자들은 대중 지향의 새로운 저널이 종교 교리의 전파를 위해 유용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무역과 여타 상업 활동하던 이들은 신문이 시장 정보를 보다 빨리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기존의 정치적 정설에 도전하는 이들은 물론, 수구 정치 세력들도 그들 나름의 정치적 설득 수단으로써 인쇄물에 새로운 관심을 쏟았다. 신문은 점차 사람들은 교양시키는 잠재적 수단으로 인식되어 갔다. 성직자나 상업적 이익 집단, 그리고 정치 세력은 모두 신문을 교육용으로 이용하려 했는데, 이는 곧 그들의 표적 수용자를 상대로 계몽, 선전함을 뜻한다. 권력층이 지배 수단으로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처음으로 중요시되었다. 분석의 편의상, 유럽과 식민지 미국에서의 초기 인쇄물은 종교적 교리, 상업적인 문제, 정치적 설득 그리고 대중 교육 등에 관한 정보 출판의 매개로 기능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들 네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 신문은 구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한 매개체나 도구의 역할을 수행했다. 17~18세기의 정기 간행물은 결코 오늘날과 같은 신문은 아니었다.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신문이라 할 만한 최초의 간행물은 19세기의 3분의 1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 뉴욕에서 비로소 등장했다. '신문'이란 말의 기원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히고 있는데, 분명히 그 말은 '저널'의 어원인 듀르나에서 연원 된 것이다. 저널리스트란 단어는 17세기 영국에서 '집필자' 또는 '보도자'와 동의어로 처음 나타난 것 같다. 그리스 신들의 사자라는 말은 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띤 도구적 존재, 즉 자기 주인을 위해 일하는 대항자로서 곧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