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와 폐쇄성

인쇄는 폐쇄 의식을 조장하였다. 이 폐쇄 의식은 텍스트가 마무리되어 완성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문학 창작과 분석적 철학 및 과학 저작에도 영향을 주었다. 인쇄 이전에는 필사 자체가 지적인 폐쇄 의식을 조장하였다. 사고를 회자로부터 분리해 지면에 고립시키고, 이에 따라 언어를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고 또 비판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필사는 말과 사고를 다른 모든 것과 무관하며 어느 정도 자기 충족적이고 완전성을 띠게 했다. 인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말과 사고를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유리하게 만들었으며, 보다 더 자기 충족 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인쇄는 사고를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똑같은 수천 권의 책에 담아냈다. 동일한 판의 책들이 언어 사용에서 일치하는가를 소리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시각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힌맨 조합기를 사용하면, 각 책의 페이지를 대조해 만일 다른 점이 발견되면 점멸등으로 알려준다. 인쇄된 책은 저자의 언어를 명확하고 최종적인 형식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쇄는 항상 최종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활자 조판이 마무리되어 강판되거나 사진 평판이 완성되어 인쇄기에 걸리고 나면, 필사에서 하듯이 지우거나 추가하는 등의 수정이 불가능하다. 반면 주석이나 논평이 붙은 필사본은 그 경계 외의 세계와 대화를 한다. 주고받는 구두적 표현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필사본의 독자들은 인쇄본의 독자들에 비해 저자로부터의 격리나 저자 부재의 현상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인쇄에 의해 강화된 폐쇄 의식이나 완전성은 때로는 전적으로 물리적이다. 신문의 지면은 언제나 무엇으로든 꽉 채워지며 모든 행은 일정한 폭으로 가지런히 정렬된다. 인쇄는 물리적인 불완전성을 참지 못한다. 인쇄는 그 담아내는 자료가 완전하거나 일관성을 지닌다는 인상을,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미묘한 방식으로, 그러나 대단히 현실적으로 줄 수 있다. 인쇄는 더욱 엄격하게 폐쇄된 언어 예술 형식을 만들어 냈다. 이는 이야기체의 경우에 특히 두드러진다. 인쇄 이전에는 선형의 플롯을 가진 긴 이야기라고는 고대부터 필사에 의해 통제되어 온 희곡이 유일한 것이었다. 에우리피테스의 비극은 필사에 의해 구성된 텍스트로서 그대로 암기되어 구두로 재현되었다. 인쇄가 시작되면서 엄격한 플롯이 긴 이야기에도 확대되어 제인 오스틴의 시대 이후로는 소설에도 도입되었으며, 탐정 소설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인쇄는 결과적으로 문학 이론 분야에서는 형식주의와 신비평을 태동시켰다. 이들은 언어 예술의 모든 작품은 언어적 기호인 작품 자체의 세계에 폐쇄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기호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점이다. 필사 문화는 언어 예술 작품들이 구두적인 것으로 충만한 세계와 아직도 친밀하게 맞닿아 있으며, 시와 수사학을 효과적으로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현상학이나 비판 이론 진영이 매우 중요시하는 상호 텍스트성이라는 근대적 쟁점도 인쇄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상호 텍스트성이라는 것은 문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 논하는 개념으로서, 텍스트는 생생한 체험만으로 창작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경험을 조직화하여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필사 문화는 상호 텍스트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대부분 거의 대등한 범주의 내용으로 구성되는 구두 문화의 특성이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다른 텍스트로부터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 냈다. 누구나 아는 구두의 문구나 화재들을 빌려 오고 수정하고 공유하였다. 인쇄 문화 체제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인쇄 문화는 한 작품을 다른 것과 구분되어 폐쇄된 하나의 단위로 본다. 인쇄 문화는 '독창성'과 '창조성'의 낭만적 개념을 만들어냈다. 즉, 개별 작품들이 다른 것과 더욱 철저히 구분되며, 그 기원과 의미가 최소한 관념적으로라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상호 텍스트성의 논의가 나타나면서 낭만적 인쇄 문화의 고립주의적인 미학에 반론을 제기하자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근대의 작가들은 고통스럽게 문학의 역사를 알게 되고, 또한 그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사실상의 상호 텍스트성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들이 사실은 전혀 새롭거나 신선한 것이 없는 것을 만들어 냈으며, 자기 작품들이 모두 다른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에 이르자 심한 혼란에 빠졌다. 해럴드 블룸의 저작 "영향의 불안"은 이러한 근대 작가들의 고뇌를 다루고 있다. 필사 문화에서는 이처럼 외부의 영향에 전염되는 것에 대한 고뇌가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매우 드물었으며 구두 문화에서는 전혀 없었다. 인쇄는 문학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분석적인 철학과 과학의 저작에서도 폐쇄 의식을 가져왔다. 인쇄 시대에 들어서면서 학술적인 주제에 대해 과거보다 덜 산만하고 덜 논쟁적인 교리 문답서와 교과서들이 나오게 되었다. 반면, 구두 문화나 그 잔재가 남아 있던 필사 문화에서는 외울 만한 문장이란 속담류나 격언류의 형태가 많았다. 속담류는 '사실'이 아니라 성찰을 제시해 주며, 격언은 역설을 내포함으로써 더욱 성찰하게 만든다. 인쇄에 의해 조장된 폐쇄 의식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고정된 관점이다. 마셜 맥루언도 이러한 관점의 고정화는 인쇄 문화의 산물이라고 논한 바 있다. 고정된 관점으로 인해 긴 산문을 써 내려가면서도 고정된 논조가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다. 고정된 관점과 논조는 어떤 의미에서는 저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다른 측면에서는 양자 간의 암묵적인 이해를 확대했다. 저자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가기만 하면 됐다. 모든 것을 굳이 풍자류로 만들거나, 다양한 관점이나 다양한 감성의 논조를 뒤섞을 필요도 없었다. 저자는 독자가 따라오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독자 공중'이 생겨났다. 이들은 상당수의 독자 고객들로서 저자는 이들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확립된 관점을 설파할 수 있었다. 

'세계 언론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기 신문의 단계적 발전  (0) 2023.01.09
근대 신문의 기원  (0) 2023.01.08
근대 인쇄의 의미  (0) 2023.01.03
인쇄, 공간과 의미  (0) 2023.01.02
근대 신문의 형성과 발전  (0) 202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