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공간과 의미

필사는 원래 구두로 존재하던 언어를 시각적 공간에 재구성했다. 인쇄는 언어를 더욱 한정된 공간에 묶어 놓았다. 이러한 측면은 여러 가지 현상에서 나타난다. '색인' 목록은 필사와 함께 사용되었다. 잭 구디는 기원전 1300년경의 우가리트어나 기타 초기의 문자에서도 목록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목록에 담긴 정보는 그것이 처한 사회적 상황이나 언어적 문맥에서 추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목록 자체는 구어적인 등가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물론 그 단어가 의미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쓰인 단어가 발음되어 마음속의 귀를 울려야 하지만 말이다. 구디는 또한 이러한 목록을 만들던 초창기에 항목과 숫자를 구분하는 선, 자로 그은 선, 끼워 넣은 선, 연장한 선 등으로 이루어진 공간 활용이 매우 어색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관리용 목록 외에도 행사 목록, 어휘 목록, 그리고 외워서 암송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집트의 고유 명사 목록 등에 대해서 논하였다. 아직 구두의 영향을 많이 받던 필사 문화에서는 구두로 재생하기 위해 무언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지적으로 진보한다고 느끼게 하였다. 여기에서 쓴다는 것은 여전히 말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었다. 구디가 제시한 예는 필사 문화 가운데 언어로 표현한 자료를 공간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친 사례도 보여 주고 있다. 목록에는 연관된 항목의 이름들을 물리적, 시각적으로 동일한 공간 속에 배치하고 있다. 인쇄는 시각적으로 조직화하고 효과적으로 재생하기 위해 공간을 더욱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색인이 바로 주요하게 발전한 증거이다. 알파벳순으로 된 색인은 놀랄 정도로 단어를 말에서 해방하고 활자 공간으로 옮겨 버렸다. 필사본도 알파벳순으로 색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만들지 않았다. 이는 동일한 작품을 받아 적는다고 하더라도 사본에 따라 페이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본마다 별개의 색인이 필요했던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색인이 그만한 노력을 들일 만큼 가치 있는 일로 취급되지 않았다. 외워서 기억으로 재생해 내는 것이 철저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훨씬 효율적이었다. 필사본에 자료를 시각적으로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색인보다는 그림 표기가 더 선호되었다. 가장 즐겨 사용된 기회는 단락으로서, 이는 원래 글의 한 단위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표시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13세기 유럽에서 알파벳 색인이 처음 나타났지만, 초기에 색인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그나마 매우 조악했으며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한 사본을 토대로 만들어진 색인이 페이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본에 그대로 제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색인이 때때로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다거나 신비롭다는 것 때문이었다. 1286년 제노바의 한 편집자는 스스로 고안하여 색인을 만들고는 자신의 솜씨에 놀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신의 은총'에 놀랐다고 한다. 오랫동안 색인 첫 글자, 아니 그보다도 첫 발음만 가지고 만들었다. 예를 들어 1506년 로마에서 발행된 라틴어책의 색인을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탈리아어나 라틴어를 사용할 때 h는 묵음이 되기 때문에 'Halyzones'는 a 항에 분류되었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재생할 때도 청각 기능에 의존했다. I.R. 텍스터가 쓴 'Specimen epithetorum'의 색인에는 'apollo'라는 단어가 a 항목의 제일 앞에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저자인 텍스터가 시와 관련된 저작에서는 시의 신이 제일 앞에 나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쇄된 색인에서도 시각적 재생은 중요도에서 뒤졌다는 것이 분명하다. 개인화된 구두의 세게는 아직도 언어의 대상화 과정을 압도하고 있다. 알파벳 색인은 사실상 청각 문화와 시각 문화의 교차로라 할 수 있다. 색인은 원래 '장소의 색인' 혹은 '인용구의 색인'의 줄임말이다. 수사학은 여러 '장소들 제공한다. 그곳에서는 여러 주장을 만날 수 있으며 원인이나 결과, 관련된 내용 또는 전혀 새로운 내용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구두에 의존하고 책에 덧붙이는 의례적 부가물로 여겨졌으므로 400여 년 전에 색인을 만들던 사람들은 본문 가운데 어느 쪽에 이용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를 보여 줄 뿐이었다. 그 장소들의 목록과 페이지를 색인란에 적어 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장소라는 것이 처음에는 사상이 축적되는 마음속의 장소라는 생각이 희미하게나마 있었다. 이 희미한 마음속의 장소가 인쇄된 책에서는 아주 물리적이고 시각적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새로운 지적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공간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책은 말이라기보다 사물이었다. 필사 문화에서는 책은 사물이라기보다 대화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말의 한 종류라는 관념이 남아 있었다. 인쇄 이전, 즉 필사 시대의 책은 표지도 없었고 제목도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 첫머리 혹은 본문의 첫 단어를 가지고 목록을 만들었다. 인쇄가 시작되면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표지가 등장하였다. 표지는 곧 상표다. 이는 곧 책을 사물이나 객체의 일종으로 보는 관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중세의 필사본에는 표지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두 문화의 전통이 바로 여기에도 살아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전통은 이야기나 다른 전통적 설화들에도 남아 있다. 상표와도 같은 제목은 구두 문화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호머가 일리아드의 한 이야기를 암송하면서 '일리아드'라고 제목부터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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