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신문의 형성과 발전

인쇄물의 발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류 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인쇄술이 발명되고 보편화됨으로써 인간들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근대적 인쇄술은 바로 인쇄 매체의 발전을 수반하여 근대적 신문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중세 후반부터 상공업이 발전하고 전쟁이나 지리상 발견으로 사회적 유동성이 증대되면서 인간의 생활 세계가 한정된 폐쇄 공간을 넘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정보 욕구도 늘어나게 되었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매체가 요구되었다. 신문의 발전 과정을 개괄해 보면, 중세에 필사나 서한의 형태로 이루어지다가 인쇄술을 도입하여 부정기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점차 정기성을 띠게 되고 나아가서 그 정기성의 간격이 점차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해 하루 단위의 일간 신문이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신문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역사적으로 근대와 함께 성장하였다. 중세 후반부터 새로운 이념을 부르짖으며 기존의 사회 질서에 도전한 신흥 시민 계급들이 이 신문을 자신들의 사상적 무기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신문은 근대 시민 혁명의 성공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2부에서는 인쇄술의 발명으로 매체 분야에서 신문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성립되어 가는 과정과 이에 따른 변화를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월터 옹의 글은 인쇄술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미친 영향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인쇄가 인간의 의식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거의 연구되지 못한 분야로서 중요한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스미스는 근대 신문이 출현하여 발전, 정착해 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쇄 매체인 신문이 사회적 조건들과 어떻게 연결되면서 발전해 갔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 글은 인쇄 매체가 먼저 발전한 유럽뿐만 아니라 동양 신문의 발달 과정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근대 시민 혁명의 성공으로 언론 자유사상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이는 자유를 억압하는 중세적 질서를 무너뜨린 결과였다. 알철은 근대에 들어서 언론 자유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그의 글은 언론 자유가 갖는 이면의 신화적 성격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인쇄 혁명과 커뮤니케이션' 한정된 글 속에서 인쇄의 모든 영향을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의 두 권에 걸친 저작을 대강만 훑어보아도 인쇄의 영향이 얼마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것인가는 잘 알 수 있다. 아이젠슈타인은 인쇄술이 이탈리아의 문예 부흥으로 승화시켰으며, 신교의 종교 개혁 운동과 구교의 재정립에도 기여하였고,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유럽의 지구상 발견에도 기여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 밖에도 가정생활과 정치를 변화시켰으며, 유례없는 지식의 전파를 가능케 하였고, 문자 해독 능력을 모든 사람의 일반적인 목표로 만들었으며, 근대 과학의 성립을 가능케 하였고, 또한 사회적, 지적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마셜 맥루언은  와  에서 인간의 의식에 미친 인쇄의 미묘한 영향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러한 측면은 조지 슈타이너의 과 본인의 여러 저작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관찰할 수 있는 사회적 영향보다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인쇄의 미묘한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다양한 재료의 표면에 그림이나 형상을 새겨왔다. 7~8세기 이후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는 목판에 양각으로 문자를 새긴 인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쇄 발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5세기 유럽에서 알파벳 문자의 활판 인쇄기 발명이었다. 이 활판 인쇄기는 단어를 음소 단위의 공간적 등가물로 세 문자는 텍스트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러나 활판 인쇄술에서는 달랐다. 단어를 이루기 전부터 이미 하나의 단위로 존재하는 활자들로 단어가 만들어졌다. 인쇄가 이루어지면서 단어 자체가 전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활판 인쇄술도 완전히 새로운 발명품은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이동식 활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알파벳과 같은 것은 없었으며 단지 상형 문자인 글자만이 있었을 뿐이다. 14세기 중엽에야 한국인과 위구르 터키인들에 의해 알파벳과 이동식 활자를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활자들도 개개의 음소 단위는 아니고 음절 단위였다. 개개의 자모가 별개의 금속 조각이나 활자로 새겨지는 알파벳 활판 인쇄는 심리적 측면에서 기존 질서에 단절을 가져오는 두드러진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언어 자체가 제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언어는 일종의 상품이 되었다. 여러 단계를 거치며 많은 부품을 조립하여 복잡한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 내는 분업화된 최초의 조립 라인은 난로나 구두, 무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닌, 인쇄된 책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 인쇄업자들이 하던 이 조립 과정이 다른 제조업 분야에 적용된 것은 300여 년 후인 1700년대 후반 산업 혁명에 이르러서였다. 많은 기호학적 구조주의자들의 가정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효과적으로 구상화시키며 그것으로 지적 활동을 구상화시킨 것은 쓰기가 아니라 바로 인쇄였다. 그 이전의 지적 세계에 영향을 주며 지배했던 것은 시각보다는 청각이었다.